[긴급 진단] 홍콩의 명물 '대나무 비계', 2025년 최악의 화재 참사로 본 위기와 전망
홍콩의 마천루를 감싸는 독특한 풍경, 바로 '대나무 비계(Bamboo Scaffolding)' 인데요.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초고층 빌딩을 자연 소재인 대나무가 거미줄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은 홍콩을 방문한 여행객들에게는 경이로운 볼거리이자, 홍콩 건축문화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2025년 11월, 이 상징적인 구조물이 최악의 비극을 불러온 '불쏘시개'가 되고 말았는데요. 오늘 글에서는 홍콩 건축의 효율성을 상징하던 대나무 비계가 왜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번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화재' 사건을 계기로 이 전통 기술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대나무 비계(Bamboo Scaffolding)란 무엇인가?
비계(Scaffolding) 란 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을 말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는 강철 파이프를 사용한 시스템 비계를 사용하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대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합니다.
이 기술은 광둥어로는 '탑붕(Daap Pang)' 이라 불리며, 수천 년 전 중국 본토에서 시작되어 홍콩으로 넘어와 꽃을 피운 기술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물이 못이나 접착제,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대나무와 이를 묶는 검은색 나일론 끈(과거에는 등나무 줄기 사용)만을 이용해 수십 층 높이의 건물을 뒤덮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냅니다.
2. 홍콩은 왜 강철 대신 '대나무'를 선택했나?
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홍콩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대나무 비계를 고집해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통 고수가 아닌, 철저한 경제 논리에 기반합니다.
- 압도적인 경제성: 대나무는 강철 파이프 대비 자재비가 30% 수준에 불과합니다. 물가가 살인적인 홍콩 건설 시장에서 이는 엄청난 메리트입니다.
- 기동성과 유연성: 홍콩의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고 외벽 구조가 복잡합니다. 강철 비계는 설치가 까다롭지만, 대나무는 현장에서 즉시 잘라 틈새를 메우고 구조를 짤 수 있습니다.
- 설치 속도: 강철 비계보다 설치 및 해체 속도가 약 6배 빠릅니다. '스파이더맨'이라 불리는 비계공들은 하루에 2,000제곱미터 이상의 비계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홍콩 당국이 금속 비계로의 전환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대나무 비계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3. 2025년 11월, 홍콩을 집어삼킨 화마 (웡 푹 코트 참사)
2025년 11월 26일 오후 2시 52분경, 홍콩 북부 타이포(Tai Po) 지역의 '웡 푹 코트(Wang Fuk Court)' 아파트 단지에서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는 1996년 가리 빌딩 화재 이후 홍콩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사고 개요
- 발생 일시: 2025년 11월 26일 오후 3시경 (현지 시각)
- 피해 규모: 최소 36명 사망, 279명 실종 (11월 27일 기준), 부상자 29명
- 특이 사항: 사망자와 실종자 다수가 고령층이며, 건물 외벽 리모델링 공사 중 발생
무엇이 피해를 키웠나? (대나무와 그물망의 역설)

이번 화재의 핵심 원인은 '대나무 비계'와 이를 덮고 있던 '녹색 안전 그물망' 이었습니다.(위 사진 참고)
- 거대한 불쏘시개 역할: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용접 작업을 하던 중 튄 불꽃이 건조한 대나무 비계와 나일론 소재의 안전 그물망에 옮겨붙었습니다.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던 이 구조물들은 순식간에 거대한 땔감이 되어 불길을 아파트 전체로 확산시켰습니다.
- 굴뚝 효과(Chimney Effect): 비계와 건물 외벽 사이의 틈이 굴뚝 역할을 하여 불길이 아래에서 위로 초고속으로 치솟았습니다. 목격자들은 "비계가 불에 타 10~20층 높이에서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 대피로 차단: 창문을 막고 있던 폴리스티렌(스티로폼) 보드가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었고, 고열로 인해 구조대 진입조차 어려웠습니다.
- 취약한 거주 계층: 해당 아파트는 1983년 준공된 정부 보조 아파트로, 입주민의 36%가 65세 이상 고령자였습니다. 화재 경보 시스템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제때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습니다.
4. 예고된 인재(人災), 그리고 안전 불감증
이번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예고된 인재'라는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유명무실했던 경고
전문가들은 꾸준히 대나무 비계의 화재 취약성을 경고해 왔습니다. CNN 인터뷰에 따르면 소방 컨설턴트들은 "대나무 비계에 난연 처리를 하더라도 결국은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라며, 현대 건축 법규 하에서 이런 위험한 자재가 쓰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늦어진 정책 시행
홍콩 개발국은 이미 지난 3월, 안전 우려를 이유로 대나무 비계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금속 비계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비용 문제와 업계의 관행 탓에 현장 적용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웡 푹 코트 현장에서도 대나무 비계가 사용되다 참변을 맞았습니다.
유사 사례의 교훈 망각
이번 화재는 가연성 외장재로 인해 72명이 사망한 2017년 영국 런던의 '그렌펠 타워 참사'와 판박이입니다. 건물 외벽을 감싼 가연성 물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전 세계가 알고 있었음에도, 홍콩은 효율성이라는 명분 아래 안전을 등한시했습니다.
5. 홍콩 사회의 분노와 정치적 파장
이번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홍콩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선거 민심의 동요: 오는 12월 7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참사로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홍콩의 고질적인 주거난과 낙후된 공공주택의 안전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으며, 정부의 관리 감독 부실에 대한 비판이 거셉니다.
- 중국 중앙정부의 개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총력 구조와 사고 수습"을 지시할 만큼 사안이 위중합니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 역시 이를 "대재앙"으로 규정하고 불법 자재 사용 여부와 안전 규정 위반을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 대나무 비계의 향후 전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
그동안 대나무 비계는 '경제성'과 '친환경'이라는 장점으로 생명력을 유지해 왔는데요. 하지만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웡 푹 코트 참사는 이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트리거(Trigger)'가 될 것입니다.
전망 1: 강력한 퇴출 정책 시행
기존의 '단계적 축소' 방침은 '즉각적인 금지' 또는 '초고강도 규제' 로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주거 밀집 지역이나 고층 아파트의 리모델링 공사(R&R Works)에서는 대나무 비계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금속 비계(시스템 비계) 사용이 의무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망 2: 안전 비용의 급증
건설 업계는 이제 더 이상 '저렴한 비용'을 이유로 대나무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금속 비계 도입에 따른 공사비 상승은 불가피하며, 이는 홍콩의 건축 단가 상승과 관리비 인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전망 3: 제한적인 명맥 유지
대나무 비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화재 위험이 적은 단층 건물 공사나 신축 현장의 일부 보조 수단, 혹은 문화적 상징성을 보여주는 전시용 구조물 등으로 그 용도가 극히 제한될 것입니다.
📝 마치며: 효율성이 안전을 앞설 수는 없다
홍콩의 대나무 비계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 척박한 도시 환경을 극복한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웡 푹 코트의 비극은 "아무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기술이라도,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면 지속될 수 없다" 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제 홍콩의 스카이라인에서 '거미줄' 같던 대나무 비계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더 튼튼하고 안전한 강철 구조물이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러한 후진국형 인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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