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달밤, 외교와 예술이 만나다: 2025 APEC 갈라 디너, 그 이상의 이야기
2025년 늦가을, 천년 신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도시 경주에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는데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화려한 서막을 연 환영 만찬은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깊이와 미래 비전을 동시에 선보인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는 평이죠. 이번 글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무거운 의제를 잠시 내려놓고, 음식과 음악, 예술이라는 만국의 공통어로 소통했던 그 밤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경주가 세계를 품다
이번 만찬의 첫 번째 주인공은 단연 '장소'였죠. 당초 신라의 유물을 품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서 기획되었던 만찬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참석 규모로 인해 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라한셀렉트 호텔의 대연회장으로 급히 변경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이번 APEC 회의에 쏠린 국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방증하는 해프닝이었습니다.
만찬장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 등 21개 회원국 정상과 각료, 그리고 UAE 대표와 IMF 총재 등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들이 자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딱딱한 회의장이 아닌, 신라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유려한 공간이었는데요.
이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명제를 경주라는 도시 자체가 증명해 보인 순간이었습니다. 천년 고도의 밤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특별한 외교 무대로 변모했습니다.
미식으로 그려낸 화합의 지도: 에드워드 리의 맛의 외교
외교의 언어가 때로는 혀끝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가 총괄한 만찬 메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화합'이라는 주제를 접시 위에 완벽하게 구현해 낸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한식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여러 문화권의 입맛을 아우를 수 있는 창의적인 해석을 더했습니다.
만찬 테이블에 오른 요리들은 경주의 땅과 시간이 빚어낸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경주 지역의 자랑인 '천년한우'는 부드러운 갈비찜으로 재탄생했고, 향긋한 '곤달비' 나물은 세계인의 입맛에 맞춘 비빔밥으로 변신했습니다. 경주콩으로 정성껏 만든 순두부탕은 각국 정상들의 속을 따뜻하게 데우며 환대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지역 특산물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양식 파이와 캐러멜 디저트를 코스에 조화롭게 배치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APEC의 정신을 미식의 언어로 풀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상들은 음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문화를 체험하고, 동서양의 조화라는 만찬의 숨은 메시지를 오감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숨죽이게 한 10분: K-컬처, 외교의 심장을 겨누다
이번 만찬이 전 세계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나비, 함께 날다(Journey of Butterfly: Together, We Fly)'라는 주제의 문화 공연이었습니다. 과거(신라의 빛), 현재(K-컬처의 파동), 미래(AI와 로봇 기술의 비전)를 잇는 3막의 공연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압축 성장사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1. 품격의 무게를 더한 이름, '일병' 차은우
군복을 입고 무대에 선 사회자, 바로 가수 겸 배우 차은우였습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그가 국방부의 공식적인 협조를 얻어 마이크를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얼굴 천재'라는 수식어를 넘어, 그는 유창하고 차분한 진행으로 행사의 격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전 세계 정상들 앞에서 대한민국의 청년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늠름한 모습과 글로벌 스타로서의 세련된 매너를 동시에 보여준 그의 등장은, 그 어떤 외교적 수사보다 강력한 '소프트 파워'의 상징이었습니다.
2. 무대를 집어삼킨 아티스트, 지드래곤(GD)

공연의 정점은 단연 지드래곤의 독무대였습니다. APEC 공식 홍보대사이기도 한 그는 '파워(Power)',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 '드라마(Drama)' 세 곡을 통해 왜 자신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인지를 증명했습니다.
특히, 한국 전통 '갓'을 쓰고 등장한 그의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아이템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화해 낸 그의 스타일링은 전 세계에 '전통과 혁신의 공존'이라는 강렬한 시각적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묵직한 비트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독보적인 에너지와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에,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은 잠시 외교관의 체면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어 그의 모습을 담기 바빴습니다.
이 10분 남짓한 시간은 K-팝이 특정 세대의 유행을 넘어, 국경과 세대, 이념의 벽을 허무는 강력한 문화적 현상임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허니제이와 리정, 그리고 댄스 크루 홀리뱅이 펼친 역동적인 퍼포먼스는 K-댄스의 위상을 알리며 공연의 다채로움을 더했습니다.
만파식적의 울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약속
이재명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신라의 전설 속 피리 '만파식적'을 언급하며,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온갖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 라는 뜻 처럼 세상의 모든 파도를 잠재우는 화합의 소리를 APEC을 통해 만들어가자고 제안했죠.
이번 환영 만찬은 그 연설의 완벽한 실사판이었는데요. 음식과 음악, 춤이라는 인류 보편의 언어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힌 정상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 되었습니다.
경주의 달빛 아래 펼쳐진 이 밤은 단순한 만찬을 넘어, 대한민국이 문화라는 힘을 통해 어떻게 세계와 소통하고 미래를 열어갈 것인지를 보여준 명백한 증거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넘어선 깊은 유대와 신뢰의 씨앗이 뿌려진 이 밤의 기억은,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함께 만들어갈 평화와 번영의 역사에 중요한 첫 페이지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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